김민지가 그 차트를 처음 본 것은 새벽 여섯 시, 모건스탠리 리서치 PDF의 네 번째 페이지에서였다. Exhibit 4: Long-Term DRAM cycle YoY chart. 2010년부터 2026년까지, D램 고정가격의 전년 대비 등락이 황금색 능선으로 출렁이고 있었다. 봉우리는 셋. 2013년 가을에 하나. 2017년 한복판에 하나. 그리고 2025년 늦가을부터 수직으로 치솟아 차트의 천장을 뚫고 있는, 채 완성되지 않은 마지막 하나.
민지는 형광펜 대신 빨간 펜을 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봉우리 위에 적었다. 취직. 두 번째 봉우리 위에 적었다. 머스트 이직. 세 번째, 아직 정점인지 능선인지 알 수 없는 그 수직선 위에는 — 물음표 하나를 그렸다.
소름이 돋은 것은 그 다음이었다. 차트의 왼쪽 끝, 2010년보다 더 왼쪽, 그래프가 시작되기도 전의 시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 바깥에 봉우리가 하나 더 있다는 것을. 1988년. 미일 반도체협정이 만든 사상 최대의 품귀 폭등. 서울올림픽의 성화가 타오르던 그해 9월 — 수원의 한 산부인과에서 그녀가 태어난, 바로 그 정점.
아버지는 삼성 반도체의 공정 엔지니어였다. 기흥 라인에서 밤을 새우다 딸의 출산 소식을 들었다는 사람. 민지의 돌상 사진 뒤편에는 64K D램 웨이퍼가 액자로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의 인생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황금색 능선 위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탄생 — 1988년 9월, 협정發 폭등의 정점.
취직 — 2013년 하반기, 모바일 사이클의 정점.
이직 — 2017년 1월, 슈퍼사이클의 정점 진입.
그리고 지금 — 2026년 6월, 사상 최대의 봉우리. 나는 또 어떤 변곡점에 서 있는가.
우연이라면 고약한 우연이고, 운명이라면 직업병 같은 운명이었다. 동료들은 웃으며 말하곤 했다. "민지님이 이직하면 그게 고점 시그널입니다." 농담이었다. 그러나 2026년 6월의 민지는 그 농담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노무라가 삼성전자 목표가를 59만 원으로, 하이닉스를 400만 원으로 올려 부른 주간이었다. JP모건은 "메모리는 더 이상 원유가 아니라 장기계약 인프라"라고 썼다. 그리고 모건스탠리의 이 보고서는 굵은 글씨로 묻고 있었다. What's different? — 이번엔 무엇이 다른가. 소비자 가전의 수요가 아니라 '지능'의 수요라고. 토큰 제조업의 필수 원자재가 되었다고.
민지는 의자를 뒤로 젖혔다. 광안리의 새벽 바다가 창에 어른거렸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 그녀는 그 말을 인생에서 두 번 들었다. 2013년에 한 번, 2017년에 한 번. 그리고 두 번 다, 그 말이 컨센서스가 된 직후에 능선은 꺾였다. 하지만 — 그녀는 동시에 알고 있었다. 사십 년에 한 번쯤은, 정말로 다른 때가 온다는 것도. 1988년의 그 봉우리가 그랬다. 그것은 사이클의 정점이 아니라, 제국이 교대하는 소리였다.
판단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짚어야 했다. 그녀는 새 문서를 열고 제목을 적었다. 『비망록 — 나의 네 개의 봉우리』. 첫 장의 시간은, 그녀가 태어나기 3년 전의 캘리포니아였다.
앤디 그로브의 사무실 창밖으로 실리콘밸리의 메마른 언덕이 보였다. 책상 위에는 분기 실적표. 붉은 숫자, 또 붉은 숫자. 인텔이 발명하다시피 한 D램 — 1103 칩으로 회사를 일으켜 세운 바로 그 사업이, 이제 회사 전체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이유는 바다 건너에 있었다. 일본. NEC, 히타치, 도시바, 후지쯔, 미쓰비시. 그들은 정부 주도의 초LSI 연구조합으로 기술을 공유했고, 은행은 끝없이 돈을 댔고, 품질은 — 인정하기 싫지만 — 미국산보다 좋았다. HP가 공개 석상에서 일본산 D램의 불량률이 미국산보다 월등히 낮다고 발표했을 때 실리콘밸리는 술렁였다. 그리고 일본 업체들은 64K, 256K D램을 원가 이하로 미국 시장에 쏟아붓고 있었다. 256K 가격은 한 해 만에 3달러대에서 1달러 밑으로 무너졌다. 덤핑이라 외치는 동안에도 인텔의 점유율은 한 자릿수로 쪼그라들었다.
그로브는 창업자이자 회장인 고든 무어의 방으로 걸어갔다. 훗날 그로브 자신이 회고록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에 기록한, 반도체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화가 그곳에서 오갔다.
"고든, 만약 우리가 쫓겨나고 이사회가 새 CEO를 데려온다면 — 그 사람은 무엇을 할 것 같소?"
무어는 망설이지 않았다. "메모리를 접겠지."
그로브는 한동안 무어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저 회전문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우리 손으로 그렇게 하면 되지 않겠소?"
1985년, 인텔은 D램에서 철수했다. 회사의 정체성이자 자존심이었던 사업을 창업자들이 제 손으로 끊어냈다. 모스텍은 이미 무너졌고 AMD도, 내셔널도 차례로 메모리를 버렸다. 미국 D램 진영에 끝까지 남은 것은 아이다호 감자밭 한가운데의 마이크론과 TI 정도. 1980년 세계 D램의 7할을 쥐었던 미국은 몇 년 만에 2할 아래로 떨어졌고, 그 자리를 일본이 8할 가까이 채웠다.
이듬해 워싱턴이 움직였다. 1986년 9월, 미일 반도체협정. 마이크론의 반덤핑 제소와 SIA의 301조 청원, 레이건 행정부의 압박이 응축된 문서였다. 일본은 원가 이하 덤핑을 중단하고 — 사실상 통산성이 생산과 수출가를 관리하고 — 자국 시장의 외국산 점유율을 20%까지 올리기로 했다. 1987년엔 협정 위반을 이유로 100% 보복관세까지 날아갔다. 도쿄는 이를 갈며 따랐다. 일본 D램의 증산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워싱턴은 자국 산업을 지켰다고 자축했다. 그러나 협정은 일본의 '공급'을 묶었을 뿐, 미국의 '생산'을 되살리지 못했다. 인텔은 떠났고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 남은 업체들의 증설은 굼떴다. 그런데 마침 그때 — PC라는 괴물이 깨어나고 있었다.
1988년. 수요는 폭발하는데 최대 공급자 일본은 묶여 있고 미국은 공장을 닫은 뒤였다. 결과는 산수처럼 명료했다. D램 가격은 단기간에 두세 배로 치솟았고, 미국 PC 제조사들은 메모리를 못 구해 아우성쳤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던 협정이 자국 컴퓨터 산업의 목을 조르는 역설 — 그리고 이 폭등의 한복판, 1988년 9월. 서울에서 올림픽 성화가 타오르고, 수원에서 김민지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날도 기흥 라인에 있었다. 족쇄를 차지 않은 제3의 플레이어, 적자 6년 차의 그 라인에.
전쟁의 제1·2법칙 — 위대한 후퇴는 위대한 공백을 남기고, 공백은 반드시 채워진다(제1법칙). 그리고 규제는 가격을 만들고, 가격은 도전자를 키운다(제2법칙). 1986년 협정이 실제로 한 일은 일본 응징이 아니라, D램 가격을 인위적으로 띄워 신규 진입자의 적자를 메워줄 현금흐름을 시장에 깔아준 것이었다.
민지가 자라며 들은 옛날이야기에는 호랑이 대신 웨이퍼가 나왔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늘 1983년 2월 8일에서 시작됐다. 도쿄.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이 초고밀도집적회로 — 메모리 반도체 진출을 선언한 날. 훗날 '도쿄 선언'으로 불리게 될 그 결단을, 세계는 무모함으로 읽었다. 일본 미쓰비시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냈다.
그해 말 삼성은 64K D램 개발에 성공한다. 미국·일본과의 격차 4년을 6개월 만에 따라잡았다는 발표였다. 그러나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1984년 양산을 시작하자마자 일본발 덤핑 폭풍이 덮쳤다. 4달러에 만든 칩을 30센트에 팔아야 했다. 해마다 수백억, 누적 수천억의 적자. 그룹 안에서도 "밑 빠진 독"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삼성은 적자 속에서 거꾸로 라인을 늘렸다. 1라인이 적자를 내는 동안 2라인을 팠고, 2라인이 완공되기 전에 3라인을 설계했다. 후계자 이건희는 훗날 반도체를 "시간 산업"이라 회고했다 — 남보다 한발 먼저 쏟아붓는 자만이 살아남는 산업. 아버지의 표현은 더 간명했다. "수율은 시간이 해결한다. 캐파는 결단만이 해결한다."
그리고 1987–88년, 그 가격 폭등이 왔다. 일본은 협정에 묶여 있고, 미국은 떠났고, 수요는 폭발하는 바로 그 자리에 — 족쇄 없는 삼성의 신규 라인들이 정확히 맞물려 들어갔다. 1988년, 민지가 태어난 그해, 삼성 반도체는 창사 이래 최대 흑자로 6년 치 누적 적자를 일거에 씻어냈다. 도박이 아니었다. 빈자리를 계산한 침투였다.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4M에서 일본과 동률, 16M에서 추월. 1992년 — 민지가 네 살이 되던 해 — 삼성전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D램 점유율 세계 1위에 올랐다. 도쿄 선언으로부터 꼭 9년. 헤게모니는 미국에서 일본으로 6년 만에 넘어갔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6년여 만에 기울었다.
일본의 끝도 아버지는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협정으로 증산이 묶인 사이 가격 결정력을 잃었고, 플라자 합의의 엔고가 원가를 짓눌렀고, '싸고 빠른 범용품' 경쟁에서 과잉품질의 함정에 빠졌다. NEC와 히타치의 D램은 엘피다로 합쳐졌으나 2012년 파산해 마이크론에 흡수됐다. 도시바 메모리는 키옥시아가 되어 팔려나갔다. 한 시대의 제국이 그렇게 저물었다 — 민지가 증권사 입사 원서를 쓰던 바로 그 무렵에.
삼성 플레이의 해부 — 통설은 "총수의 뚝심"이지만 구조를 뜯으면 세 개의 톱니였다. ① 경쟁자의 족쇄(협정에 묶인 일본) ② 수요 쇼크(PC 대중화) ③ 족쇄 없는 자본의 선제 캐파(적자를 견디는 재벌+정책금융). 셋 중 하나라도 빠졌다면 '무모한 도박'으로 끝났다. — 이 세 톱니 체크리스트는 제7장에서 다시 꺼낸다.
2013년 하반기 공채. 스물다섯의 김민지는 여의도의 한 운용사 리서치팀에 RA로 입사했다. 담당 섹터는, 운명처럼, 반도체였다. 면접에서 "아버지가 기흥 라인 출신"이라고 말한 것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책상을 받은 시장은 뜨거웠다. 스마트폰이라는 두 번째 괴물 — PC의 적자(嫡子) — 이 모바일 D램 수요를 폭발시키고 있었다. 더 결정적인 것은 공급 쪽이었다. 십 년에 걸친 치킨게임의 시체들이 막 치워진 참이었다. 독일 키몬다가 2009년에 쓰러졌고, 일본의 마지막 자존심 엘피다가 2012년 파산해 2013년 여름 마이크론에 완전히 흡수됐다. 수십 개였던 D램 회사가 삼성, 하이닉스, 마이크론 — 단 셋으로 정리된 첫해. 과점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에 그녀는 입사한 것이다.
그리고 입사 직후, 신입 RA의 눈앞에서 사건이 터졌다. 2013년 9월 4일, SK하이닉스 중국 우시(無錫) 공장 화재. 세계 D램 캐파의 한 자락이 연기와 함께 멈췄고, 가뜩이나 빠듯하던 수급은 즉시 품귀로 돌변했다. 그해 가을 D램 고정가의 전년 대비 상승률은 차트의 천장을 때렸다 — 훗날 그녀가 모건스탠리 보고서에서 빨간 펜으로 '취직'이라고 적게 될, 바로 그 첫 번째 봉우리였다.
선배들은 말했다. "이제 치킨게임은 끝났어. 셋만 남았잖아. 이번엔 달라." 신입 민지는 그 말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 이번엔 다르다 — 2013. 그리고 2014년이 지나고 2015년이 오자, 모바일 성장이 둔화되고 3사의 증설분이 시장에 풀리면서 D램 가격은 다시 미끄러져 내렸다. 능선은 어김없이 꺾였다. 과점은 사이클의 진폭을 줄였을지언정, 사이클 자체를 죽이지는 못했다.
민지는 첫 번째 교훈을 비망록에 적었다. "공급자가 셋으로 줄어도 사이클은 죽지 않는다. 죽는 것은 '꼴찌'뿐이다."
2017년 1월, 김민지는 머스트로 이직했다. 사표를 내던 날 D램 현물가는 석 달째 수직 상승 중이었다. 2016년 여름 바닥을 친 가격이 클라우드라는 세 번째 괴물 — 아마존과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센터 — 의 식욕을 만나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버 D램의 시대. 그녀의 이직 첫해, 차트의 두 번째 봉우리가 솟아올랐다.
1년 내내 시장은 축제였다. 2017년 삼성전자는 인텔을 제치고 사상 처음 반도체 매출 세계 1위에 올랐다. 24년 만의 왕좌 탈환 — 1993년 이후 인텔이 지켜온 자리였다. 영업이익률이 50%를 넘나드는 메모리 회사들을 두고 애널리스트들은 새 언어를 발명했다. "이번 사이클은 다르다. 공급자 규율(supply discipline)의 시대다. 3사는 더 이상 치킨게임을 하지 않는다. 메모리는 이제 구조적 성장 산업이다."
민지의 노트에 같은 문장이 두 번째로 적혔다. 이번엔 다르다 — 2017.
2018년 가을, 능선이 꺾였다. 데이터센터의 주문은 재고가 되어 돌아왔고, 2019년 D램 가격은 반토막 아래로 무너졌다. '구조적 성장 산업'이라던 보고서들은 조용히 서버에서 내려갔다. 민지는 그 겨울에 운용역으로서 가장 비싼 수업료를 치렀고, 가장 값진 문장을 얻었다.
"'이번엔 다르다'는 말이 틀려서 위험한 게 아니다. 그 말이 컨센서스가 되는 시점이 늘 정점 부근이라서 위험한 것이다. — 그러나 동시에, 사십 년에 한 번쯤은 정말로 다른 때가 온다. 1988년이 그랬다. 문제는 그 둘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다."
구분법의 단서를 그녀는 역사에서 찾았다. 2013년과 2017년의 봉우리는 '수요의 봉우리'였다 — 스마트폰과 클라우드가 만든. 반면 1988년의 봉우리는 '구조의 봉우리'였다 — 족쇄와 공백과 신규 진입자가 헤게모니를 갈아치운. 수요의 봉우리는 재고가 쌓이면 꺾인다. 구조의 봉우리는 지도가 바뀌어야 끝난다. 그렇다면 2026년의 이 네 번째 봉우리는, 어느 쪽인가.
민지가 머스트에서 첫 슈퍼사이클과 첫 붕괴를 통과하던 그 시간, 지구 반대편이 아닌 바로 옆 — 안후이성 허페이의 옥수수밭에서는 다른 시계가 돌고 있었다. 2016년, 성(省) 정부와 국가 반도체 펀드의 돈이 그 땅에 쏟아져 들어갔다. 창신메모리(長鑫存儲·CXMT).
설계도, 인력도, 장비도 부족했다. 파산한 키몬다의 특허를 사들이고, 한국과 대만과 일본의 은퇴 엔지니어들을 모셔왔다. 19나노급에서 출발한 공정은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기어 올라갔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미회수 손실 360억 위안 — 약 5조 원. 민지는 CXMT 자료를 읽다가 펜을 멈췄다. 아버지의 옛날이야기와, 소름 끼치도록 닮은 적자의 행군이었다. 1980년대의 기흥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워싱턴이 다시 움직였다. 이번 상대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 2019년 화웨이 제재를 시작으로, 2022년 10월 미국은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봉쇄했다. ASML의 EUV 노광기는 단 한 대도 중국 땅을 밟지 못하게 됐고, 18나노 이하 D램용 장비가 통제 명단에 올랐다. CXMT도 끝내 수출통제의 그늘 안으로 들어갔다. 1986년 통산성이 일본 업체에 채웠던 족쇄를 이번엔 미국이 중국에 채웠다. 다만 방향이 반대였다. 그때는 '많이 만들지 마라'였고, 지금은 '잘 만들지 마라'였다.
세계는 또 한 번 같은 결론을 내렸다. EUV 없이는 못 간다. HBM은 꿈도 꾸지 마라. 중국 메모리는 끝났다 — 1983년 미쓰비시연구소가 삼성에게 내렸던 바로 그 사망 선고.
그러나 CXMT는 다른 길을 팠다. EUV가 막히면 DUV 멀티패터닝으로 공정을 짜냈다. 마진이 박해 3강이 서서히 비우던 DDR4 — 레거시 시장 — 을 통째로 받아내며 캐파를 늘렸다. 2023년 7%였던 생산 점유율은 2024년 두 자릿수를 넘봤다. DDR5로, LPDDR5로 한 계단씩 올라섰고, 2026년 봄에는 DDR5 8000MT/s 달성 소식이 전해졌다. 캐파는 아직 삼성·하이닉스 개별사의 절반 수준. 격차는 존재하되, 좁혀지는 방향만은 분명했다.
민지는 비망록에 적었다. "중국은 EUV가 없다. 그러나 1985년의 삼성에게도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것은 단 하나 — 적자를 무한히 견디는 자본과, 곧 열릴 빈자리뿐이었다."
2022년 말 ChatGPT가 나왔을 때 시장은 그것을 '학습(training)의 시대'로 읽었다. GPU가 주인공, 메모리는 조연. 2023년 메모리 시장은 오히려 29% 쪼그라들며 혹독한 다운사이클을 지났다. 3강은 감산했고, 증설 트라우마를 새겼다. 그런데 2025년 가을, 무게중심이 기울었다. 에이전트형 AI가 기업 워크플로에 박히면서 진짜 수요는 학습이 아니라 추론(inference)에서 터졌다. 추론은 토큰 하나하나가 메모리 대역폭을 잡아먹는다. KV캐시가 D램을 삼킨다. 모건스탠리의 표현을 빌리면, 메모리는 '지능 제조업' — 토큰 공장의 필수 원자재가 된 것이다. 하이퍼스케일러의 2026년 설비투자는 6,000억 달러, 전년 대비 36% 증가. 그 돈의 강이 향하는 곳마다 메모리가 필요했다.
여기에 공급 쪽 구조가 불을 질렀다. HBM 1기가바이트는 범용 DDR5 1기가바이트보다 웨이퍼를 약 세 배 잡아먹는다. 3강이 마진 높은 HBM으로 라인을 돌릴수록 범용 D램 캐파는 그만큼 증발했다. 2026년 AI향 물량이 전 세계 웨이퍼 캐파의 20%를 빨아들인다는 추산. 2023년에 데인 3강의 증설은 신중했고, 마이크론이 아이다호와 뉴욕에 쏟는 1,500억 달러도 의미 있는 웨이퍼는 2027년에야 나온다. 수요는 즉시, 공급은 한참 뒤 — 1987년의 산수가 그대로 돌아왔다.
숫자가 미쳐 돌아갔다. DDR5 현물가는 2025년 9월 이후 4배. D램 가격 전년 대비 +171% — 금값 상승률 추월. 한 달 만에 가격이 두 배로 뛰는 품목이 속출했다. 마이크론의 분기 D램 매출은 사상 처음 100억 달러를 넘겼고, CEO는 실적 발표에서 수급 격차가 "우리가 본 것 중 가장 크다"고 단언했다. 2026년 HBM은 가격·수량까지 전량 계약 완료, 주문은 2027년까지 차 있었다. 그리고 상징적인 사건 — SK하이닉스가 D램 매출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36% 대 34%. 1992년, 삼성이 세계 1위에 오른 그해 이후 처음으로. HBM이라는 새 전장에서 먼저 움직인 자가 왕좌의 순서를 바꾼 것이다.
여의도와 월가의 언어도 바뀌었다. 노무라: "삼성·하이닉스는 TSMC급 멀티플을 받아야 한다 — 목표가 59만 원, 400만 원." JP모건: "메모리는 원유가 아니라 장기계약(LTA) 인프라다." 수십 년 PBR 밴드에 갇혀 있던 산업이 PER의 세계로 이주하고 있었다. 한편 서울에서는 삼성전자 파업 리스크가 공급 불안에 기름을 부었고, 회사는 라인을 HBM 중심으로 재편하며 맞섰다. 품귀 속의 품귀.
민지는 Exhibit 4의 수직선을 다시 보았다. 2013년의 봉우리도, 2017년의 봉우리도 이렇게 가파르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가 아는 '수요의 봉우리'들과 모양부터 달랐다. 차라리 — 그녀가 태어난 해의, 그 차트 바깥의 봉우리를 닮아 있었다.
상하이 과창판(科創板). CXMT의 IPO 서류가 시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민지는 이 상장을 단순한 자금 조달로 읽지 않았다. 그것은 선언이었다. 1983년 2월의 도쿄 선언이 그랬듯 — 이제부터 국가의 이름으로, 시장의 돈까지 동원해, 끝까지 간다는 선언.
구조를 보라. 8년간 5조 원의 적자를 견딘 것은 국가 자본이었다. 그런데 2025–26년의 가격 폭등이 그 적자 기업을 단숨에 뒤집었다. 247억 위안 — 4조 원대의 이익. 1988년의 폭등이 기흥의 누적 적자를 한 방에 씻어준 장면, 그러니까 그녀가 태어나던 해의 그 장면의 완벽한 재연이었다. 미국의 금수는 중국의 '기술'을 묶으려 했지만, 그 금수가 떠받친 가격은 중국의 '대차대조표'를 살려냈다. 이제 IPO로 증설 자금까지 시장에서 끌어온다. 족쇄를 채운 손이 동시에 군자금을 쥐여주고 있는 형국 — 제2법칙의 잔인한 재가동.
그렇다면 CXMT는 1985년의 삼성이 될 수 있는가. 민지는 아버지 세대의 '세 톱니'를 꺼내 하나씩 대조했다.
톱니 ① 경쟁자의 족쇄. 1986년엔 일본이 묶였다. 2026년에 묶인 쪽은 표면적으로 중국 자신이다. 그러나 3강에는 다른 형태의 족쇄가 채워져 있다. HBM이라는 황금 족쇄 — 마진이 너무 좋아서 벗을 수 없는 족쇄. 3강은 레거시 D램을 '자발적으로' 비우는 중이다. 1985년 그로브가 회전문을 돌며 떠난 그 퇴장이, 이번에는 이익 극대화라는 이름으로 세 회사에서 동시에,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톱니 ② 수요 쇼크. 그때는 PC, 지금은 AI 추론. 규모는 비교가 안 된다. 게다가 중국에는 그때의 한국에 없던 무기가 있다 — 14억의 내수와 국산화를 '명령'할 수 있는 정부 조달. 자국 스마트폰·서버·전기차가 CXMT 칩을 받아주는 한, 수출길이 막혀도 램프업의 학습곡선은 돌아간다.
톱니 ③ 족쇄 없는 자본의 선제 캐파. 국가 펀드, 성 정부, 그리고 이제 과창판. 수율보다 물량, 적자보다 캐파. 1980년대 기흥의 교본 그대로.
세 톱니가 다 있다. 그러나 — 민지의 펜이 멈췄다. 1985년의 구도에 없던 변수가 하나 있었다. 그때 삼성을 막은 것은 '시장'이었지 '물리학'이 아니었다. 64K에서 64M으로 가는 길에 출입금지 팻말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EUV라는 물리적 관문이 있고, 그 열쇠는 펠트호번에 단 하나뿐이며, 워싱턴이 그 열쇠를 쥐고 있다. DUV 멀티패터닝으로 어디까지 기어오를 수 있는가 — 공정 단수가 늘수록 원가와 수율이 기하급수로 망가지는 그 길을, 보조금이 어디까지 보전해줄 수 있는가. 그리고 HBM. 진짜 전장은 이미 레거시가 아니라 HBM인데, TSV 적층과 어드밴스드 패키징, 그 아래 깔리는 최첨단 로직 다이까지 — 도전자가 넘어야 할 산은 사십 년 전보다 훨씬 높고 가팔랐다.
민지는 두 개의 시나리오를 적고, 그 아래 자신의 확률을 매겼다.
시나리오 A — '1988의 재연' (레거시 한정). CXMT는 레거시(DDR4/5·LPDDR)의 빈자리를 흡수하며 글로벌 점유율 15%를 향해 간다. 시장은 'HBM 3강 + 레거시 중국'으로 이층화된다. 레거시 가격은 CXMT 신규 캐파가 본격 가동되는 시점 — IPO 자금의 팹 전환에 통상 2년 — 부터 꺾인다. 그날이 오면 1996년의 일본처럼, 가장 먼저 다치는 것은 레거시 비중이 가장 높은 자다.
시나리오 B — '물리학의 승리' (HBM 한정). DUV의 한계와 HBM의 진입장벽이 버틴다. CXMT는 HBM에서는 중국 내수의 챔피언에 머물고, 3강의 과점과 LTA 구조는 공고해진다. 노무라와 JP모건이 옳은 세계 — 메모리가 정말로 인프라 산업이 되는 세계.
민지의 결론: A와 B는 양자택일이 아니다. 동시에 일어난다. 시장이 하나가 아니라 둘로 쪼개지기 때문이다.
민지는 회의실 스크린에 Exhibit 4를 띄웠다. 빨간 펜 자국 — 취직, 이직, 그리고 물음표 — 이 그대로 보이게. 동료들이 웃었다. 그녀도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은 이 물음표의 이름을 정하러 왔습니다."
"제 인생의 봉우리는 넷입니다. 1988년의 탄생, 2013년의 취직, 2017년의 이직, 그리고 지금. 이 중 2013과 2017은 '수요의 봉우리'였습니다 — 스마트폰과 클라우드가 만들고, 재고가 무너뜨린. 하지만 1988은 '구조의 봉우리'였습니다 — 족쇄와 공백과 신규 진입자가 지도를 갈아치운. 그리고 제가 밤새 사십 년 치를 다시 읽고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2026년의 이 봉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입니다. 두 개의 봉우리가 겹쳐 보이는 착시입니다."
"첫 번째 봉우리는 HBM과 AI 서버 D램의 봉우리입니다. 이것은 구조입니다. LTA로 묶인 2027년까지의 물량, 수율과 패키징의 진입장벽, 토큰 수요라는 새 괴물. 이 영역에서 '이번엔 다르다'는 말은 — 제 직업적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 맞을 확률이 높습니다. PBR에서 PER로의 재분류는 이 영역에 한해 정당합니다. 두 번째 봉우리는 레거시 D램의 봉우리입니다. 이것은 사이클입니다. 그것도 우리가 아는 가장 고전적인 형태의 — 1987년식 품귀 사이클. 그리고 1987년식 품귀의 끝에는 반드시, 족쇄 없는 신규 캐파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기흥이었고, 지금은 허페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포지션은 봉우리별로 갈라야 합니다. HBM 익스포저는 구조로 대접하되, 레거시 익스포저는 사이클로 대접한다. 그리고 두 봉우리의 경계선이 흔들리는 순간 — CXMT가 HBM의 벽을 넘는 신호가 잡히는 순간 — 이 전체 논리는 폐기하고 다시 씁니다."
"감시 지표는 다섯입니다. 첫째, 허페이의 장비 반입량과 중국의 월간 웨이퍼 투입 — 점유율은 결과고 웨이퍼는 예고편이니까. 둘째, CXMT IPO의 공모 규모와 증설 계획 — 군자금의 크기가 곧 침투의 속도입니다. 셋째, DDR4·DDR5 현물가와 HBM 계약가의 디커플링 — 두 봉우리가 갈라지는 소리입니다. 넷째, 3강의 레거시 캐파 전환 속도 — 공백이 커지는 속도입니다. 다섯째, 중국산 HBM의 고객 인증 뉴스 — 이것이 울리면 게임 자체가 바뀝니다."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누군가 물었다. "그래서… 지금이 고점입니까?" 민지는 차트의 물음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답했다.
"1988년의 봉우리는 그 후로도 몇 년을 더 갔습니다. 구조의 봉우리는 재고가 아니라 지도가 바뀌어야 끝나니까요. 지도가 바뀌는 데 걸리는 시간 — 허페이의 새 팹이 웨이퍼를 뱉기까지의 시간 — 이 이 봉우리의 남은 수명입니다. 저는 그 시계를 읽겠습니다. 날짜를 점치는 대신."
회의가 끝나고, 동료 하나가 농담을 던졌다. "민지님, 그래서 이직 계획은 없으시죠? 민지님이 움직이면 그게 셀 시그널이라…" 민지는 웃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네. 저는 당분간, 아무 데도 안 갑니다."
창밖으로 광안대교의 아침이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비망록 마지막 장에는 네 개의 법칙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 세대가 세 개를 썼고, 마지막 하나는 그녀가 보탰다.
제1법칙 — 위대한 후퇴는 위대한 공백을 남기고, 공백은 반드시 채워진다.
제2법칙 — 규제는 가격을 만들고, 가격은 도전자를 키운다.
제3법칙 — 점유율은 결과이고, 웨이퍼는 예고편이다.
제4법칙 — '이번엔 다르다'는 말은 영역을 갈라서 들어라. 같은 봉우리 안에도, 구조와 사이클은 늘 함께 산다.
1986년에 워싱턴이 일본에 채운 족쇄는 한국이라는 뜻밖의 승자를 낳았다. 2026년에 워싱턴이 중국에 채운 족쇄는 지금까지 한국의 황금기를 떠받치고 있다. 그 족쇄의 청구서가 어디로 날아갈지 — 그것을 가장 먼저 읽어내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1988년 9월, 폭등의 정점에서 태어난 사람의 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전선이 둘로 갈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민지는 이번 생에 처음으로, 봉우리의 한가운데서 —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