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반도체가 아니라 "이천의 땅"이었다
현대그룹의 반도체 진출은 순수한 기술 열망이 아니라 중후장대 산업의 저부가가치 한계를 돌파하려는 생존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 첫 수는 기술이 아니라 이천의 땅 23만 평을 가진 건설회사 인수였다.
무슨 얘기였나: 1979년 정주영 회장이 반도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 1981년 종합기획실에 신규사업팀을 설치했다. 당시 현대그룹의 주력은 건설·조선·자동차 등 중후장대 산업이었고, 이병철 회장의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하는 걸 보며 고부가가치 산업 진출 필요성을 느꼈다.
이천 땅 확보가 먼저였다: 1983년 공장 부지 물색 중 이천에 32만 평이 필요했는데 마침 23만 평을 보유한 1949년 설립 건설회사 '국도건설'을 인수. 기술이 아니라 땅을 목적으로 한 인수합병이 하이닉스의 출발점이었다.
기술 조달 방식: 미국에 소규모 마더팩토리를 먼저 짓고 그 노하우를 한국으로 이전하는 방식을 택했다. 처음엔 S램으로 차별화를 시도했으나 수율 문제와 수요처 부재로 실패, 결국 디램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64K D램 파운드리(OEM) 계약을 체결하며 기술을 축적했다.
150 작전: 1985년 5월 생산 성공 후 100일 안에 수율 50%를 달성하는 "150 작전"을 선포. '1'은 100일, '50'은 수율 50%를 의미. 실제로 100일이 채 안 돼 조기 달성했다. 1989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22위 진입, 1996년 디램 점유율 세계 4위, LG반도체가 6위로 한국이 디램 강국으로 부상했다.
"미국 현지 공장을 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금까지 했던 계획 전부 두 배로 늘려' 라고 했던 정주영 회장의 스타일이 이 산업에서도 그대로 나왔다."
쉽게 풀어보기 — 파운드리(위탁생산)란?
-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를 설계한 회사 대신 제조만 해주는 생산 전문 기업. 현대전자가 TI의 D램을 대신 생산해준 것이 초기 형태. 오늘날 TSMC가 대표적.
- S램 vs D램
- S램은 속도가 빠르지만 비싸고 용량이 적어 만들기 어렵다. D램은 상대적으로 구조가 단순하고 대용량으로 생산하기 유리해 범용 메모리 시장의 표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