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산 중고 탱커가 새 배보다 비싸졌다 — 선주들의 패닉 바잉
공급 부족이 극단으로 치달으면 중고가가 신조가를 역전한다 — 자동차로 치면 5년 된 중고차가 신차보다 비싸게 팔리는 것. 지금 유조선 시장이 정확히 그 상황이다. 3년치 수주 공백이 한꺼번에 터진 결과다.
무슨 얘기였나: 신조선가 지수는 2024년 하반기부터 약 1년 반간 완만한 안정세를 보였다. 컨테이너선(후티 공격 → 희망봉 우회 수요), LNG선 가격 모두 소폭 하락 안정화. 그런데 2025년 3~4월을 기점으로 지수가 다시 고개를 들었고, 그 주범은 유조선(탱커)이었다.
두 가지 수요 충격: 첫째,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원유를 팔지 못하게 된 중동 산유국들이 유조선을 바다 위 저장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저장 탱크가 꽉 찬 상태에서 계속 생산하면 넘치기 때문. 이미 해협 안에 묶인 탱커도 많은 데 거기다 저장소로까지 쓰이니 실운항 가능한 선박이 급감. 둘째, 대체 항로로 돌아가야 하는 원유 수입국들은 동일 물량 조달에 두 배의 선복량이 필요해졌다 — 운항 거리가 두 배면 선박도 두 배.
시장이 이미 알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유조선가 상승이 이란 전쟁 발발 전인 2024년 10월경부터 시작됐다는 것. 시도상선·잔금상선 같은 대형 선사들이 그 시점에 이미 탱커를 대거 매집했다는 업계 정보가 있었다. 지정학 리스크를 선반영해 움직인 것.
"지금 급하니까, 5년짜리 중고 선박을 막 사들이고 있는 거죠. 그러다 보니 중고 선박 가격이 신조선가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탱커는 고부가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통상 국내 조선소는 도크 여백을 채우는 용도로 탱커를 수주(LNG선 사이의 빈 공간 활용). 그런데 지금 탱커 신조선가도 오르고 중고선가가 신조선가를 역전했다는 건, 선주들이 마음이 급해져 다소 높은 가격에도 발주할 의사가 있다는 신호다. 조선업 슈퍼사이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가장 강력한 근거.
쉽게 풀어보기 — 선복량·VLCC·신조선가
- VLCC (Very Large Crude Carrier)
- 초대형 원유 운반선. 이름 그대로 '매우 큰 원유 운반선'. 수십만 톤의 원유를 싣고 중동↔아시아 항로를 왕래한다.
- 신조선가
- 새로 배를 건조할 때 드는 비용. 이 가격이 오른다는 건 조선소 일감이 많아 단가를 높일 수 있다는 뜻.
- 선복량
- 배들이 실어나를 수 있는 총 화물 용량. 항로가 길어지면 같은 양을 운반하는 데 더 많은 배가 필요해 선복량 수요가 증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