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클린룸을 죽였다 — $2.3억짜리 꿈의 붕괴
Trilogy Systems의 실패는 기술적 비전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디어 자체는 Cerebras와 동일했다 — 웨이퍼를 자르지 않고, 결함을 우회(route around)하는 방식. 문제는 1980년대의 제조 수율이 그 아이디어를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 거기에 물리적 재해가 겹치면서 한 번도 작동하는 제품을 내놓지 못한 채 모든 자금이 소진됐다.
배경 — Cerebras와 동일한 아이디어를 40년 먼저: 1980년대 초, 반도체 설계의 전설 Gene Amdahl은 "왜 웨이퍼를 굳이 잘라야 하나?"는 질문을 던졌다. 결함이 있는 다이는 우회하고, 웨이퍼 전체를 하나의 칩으로 쓴다는 구상이었다. 이게 오늘날 Cerebras의 웨이퍼 스케일 엔진(WSE)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아이디어다. Amdahl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약 $2.3억을 조달했다. 오늘날 가치로 약 $10억에 달하는 규모다.
폭풍이 클린룸을 박살냈다: 1982년경, 공장에 폭풍이 몰아쳐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물이 에어컨 배관으로 스며들었고, 배관이 녹슬기 시작했다. 그 결과, 클린룸 안으로 미세 금속 먼지가 지속적으로 뿜어졌다. 웨이퍼 수율이 폭락했지만 원인을 아무도 몰랐다. 팀은 수개월에 걸쳐 원인을 추적하는 동안 자본을 빠르게 소진했다.
제품도 없이 IPO — 그리고 주가 제로: 자금이 바닥나자 Trilogy는 1983년 "Hail Mary IPO"를 감행했다. 작동하는 제품이 없는 상태에서 $6,000만을 공모로 조달했다. 그 돈도 웨이퍼 스케일 엔진 개발에 쏟아부었지만 결국 제품 출시에 실패했다. 공개시장 투자자들의 인내심이 끊겼고, $12에 상장됐던 주가는 이후 수년간 사실상 제로로 떨어졌다.
설상가상 — 비극은 계속됐다: 회사가 무너지는 과정에서 Amdahl은 자신의 초록색 롤스로이스를 사고로 크게 파손했다. 그보다 더 가혹했던 건, 재무 담당 임원 Clifford Madden이 위기의 절정에 뇌종양으로 사망한 것이었다. 회사는 결국 대규모 인원 감축과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웨이퍼 스케일 슈퍼컴퓨터 프로젝트를 완전히 포기했다. 남은 자금은 소형 미니컴퓨터 스타트업 인수에 쓰였다.
"We are not in a position to do this for another 100 years. We cannot make this happen for another 100 years." — Gene Amdahl, 1980년대 후반
Amdahl의 선언과 퇴임: 웨이퍼 스케일 엔진에 패배했다고 인정한 Amdahl은 1989년 회사를 떠났다. 그가 남긴 말 — "앞으로 100년은 불가능하다" — 은 반도체 역사의 유명한 패배 선언이 됐다.